16년 만의 홍콩

from 나날 2012/09/01 15:48

아주 오랫만에 홍콩을 다녀왔다.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홍콩은 여전히 북적거리고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뒤엉켜 살아가고 있었다
복잡한 항구 도시의 시각과 리듬감,
여전히 좋았다.

사진 몇 장을 올린다.
똑딱이 디카와 핸드폰, 비디오 등으로
찍은 것들이 뒤섞여있다.
두서 없는 몇 마디 감상을 적어본다.

*


먼저, 관광샷.  침사추이(尖沙咀)에서 바라본 홍콩섬의 야경.
가운데 레이저를 쏘고 있는 빌딩이 HSBC 본사이다.


그런데, 홍콩섬에 있는 그 빌딩의 G층에는 장기간 농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센트럴(中還)을 점령하라! 홍콩(香江)을 점령하라!'


그 농성장에 누군가 써 놓은 글이다.
백만불 짜리 야경, 수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끄는 빛 아래의 어둠에는
이런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의 카이탁 공항(啓德機場)을 좋아했다.
슬럼같은 아파트 위를 스치듯 지나 비행기가 착륙하던 공항.
그런데 사라지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카이탁'이라는 태풍이 왔다.
사진은 태풍 경보의 단계를 알리는 표지.


'오리엔트의 리비에라'라고 씌어진 옛날의 홍콩관광 포스터.
옛날 영국인들은 빅토리아 산으로 올라갈 때
현지인들이 어깨에 멘 가마를 타고 올라갔나 보다.
지금은 관광열차가 되어버린 빅토리아 트램은
예전에 영국인들이 무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산 위에 별장을 지으면서 생겼다고 한다.
가마를 타고 산길을 오르는 것도, 트램을 타는 것도
서양인들에겐 오리엔트의 아름다움처럼 보였겠지만
현지인들에겐 고달픈 현실이었을 것이다.
 

처음 올라가 본 빅토리아 산 꼭대기에서 누구나 찍는 사진 한 장.
 

택시를 타고 산 길을 내려가는 중.
왼쪽이 비어있으니 운전사 없이 질주하는 것 같다.


해피밸리(跑馬地)의 커피집.
이상하게도 홍콩에 가면 '비지스(Bee Gees)'의 노래를 듣게된다.
16년 만에 찾아갔는데도 그 옛날의 비지스가 들렸다.
오래 전 출장가서 만난 캐나다 친구가 여기 산다고 했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트램의 2층에 타서 앞의 트램을 찍었다.
시각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샷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그냥 편하게 한 장.
사실, 2층 트램의 시각적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비디오로 봐야한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를 두고 마주쳐 지나가는 건너 편 트램의 얼굴,
같은 선로를 가다 갈라져 나가는 앞 트램의 모습,
선로를 바꾸며 빠져나갈 때 새롭게 열리는 거리의 모습...


처음 보았을 때부터 눈길을 끌던 중국은행(Bank of China)의 외벽 모서리 부분.
다시 보니 반갑다.


리펄스 베이(淺水灣)의 사당에서 만난 틴하우(天后) 비석.
뱃사람들의 여신으로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모시고 있다.
영도에 있는 마조사당에서 모신 마조(媽祖)와 같은 여신.
홍콩 전역에 틴하우 사당이 있었다.


소호 거리 머리 위 복잡한 간판들.
필리핀 박사의 치과, 심야에 케밥을 먹을 수 곳,
일본 식자재 공급처, 마사지샵, 이발소, 액자 집 등등.
다양한 가게들의 간판.


홍콩 역사 박물관에 있던 1970년대 커피샵의 리메이크.
이런 야박한듯 깔끔한 디자인들을 참으로 좋아한다.
나는 놓치고 지나갔는데 아이가 핸드폰으로 찍었다.


역시 박물관에서 본 사진.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항구 도시답게
비탈길에 판자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 많이 생긴 판자집을 떠올리게 한다.
1953년 섹킵메이(石硤尾) 대화재 이후,
새로운 주거지(Resettlment)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치 부산에서 여러차례의 대화재 이후,
후생주택이 생겼던 것처럼.


그 유명한 청킹맨션. 간판은 여전했지만
건물의 외벽은 칠을 새로하고 조명을 달아서
그 옛날의 칙칙한 이미지는 많이 가셨다.


전부터 마셔보고 싶었던 오키나와의 오리온 맥주.
수퍼에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한 캔.
맛있었다.


건물 안에서 밝은 불을 켜고 있는 비상구 표지.
사람들이 많은 좁은 빌딩 속이니까
화재 등을 대비해 눈에 잘 띄는 표지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때 반환식을 TV로 보았다.
영국 왕자와 패튼 총독이 나왔고
의식을 치른 후 그들은 처음에 그곳에 왔던 것처럼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저 비상구를 보니,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서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던 시계의 이미지와
탈(脫)홍콩 러쉬도 생각이 난다.


뒷골목. 이런 뒷골목이거나 주방 뒤쪽의 좁은 공간에는
런닝 차림으로 땀을 흘리며 일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나 노인들이 많다.
그리고 공사현장에는 인도나 파키스탄 쪽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찍고 싶었지만 결례가 되는 것 같아
남포동 뒷골목을 닮은 사진만 한 장.
내가 여행자로 그 거리를 걷는 순간에도
그들은 가마를 메고 빅토리아 산을 오르던 것같은
노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문화센터의 벽 앞에서 나이드신 분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유장한 꺾임이 있는 중국풍의 노래였다.
노랫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득하고 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매일 지나다니던, 나단로드(彌敦道)와
소고(SOGO)백화점을 연결하는 지하도.
 

모든 공공건물 실내에서는 담배를 피지 못한다.
하지만 곳곳에 재떨이가 잘 마련되어 있다.
다만 호텔에서 담배 필 곳이 없어 좀 불편했다.


헤네시로드(軒尼詩道)를 지나는 트램에 붙은 영화광고.
한국에서는 아마도 개봉되지 않을, 양조위가 출연한 영화.
제목은 '聽風者'. 바람 소리를 듣는 사람.


내가 처음 이름을 기억한 홍콩 배우는 왕우(王羽).
비록 보지 못했지만, 어릴적 선풍을 일으켰던
'스카이하이(Sky High)'란 영화의 주연이었다.
그 영화를 보았던 이들이 얼마나 떠들고 다녔던지...
그 주제곡도 오랫동안 히트했었다.
'JICSAW'란 영국 밴드가 부른 디스코 풍의 노래.


호텔 근처, 특이한 문양이 그려진 타일이 붙어있는 벽.
인도와 아랍 쪽의 느낌이 든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
호텔 근처에 시그널힐 공원(迅號山花園)이 있었다.
일요일 아침 거기로 올라갔더니
흰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막 떠오 른 태양에 흰 옷들이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커다란 모스크가 있는데
왜 그들은 그 언덕 위에 모였을까?
종파가 다른 것일까?
아무튼, 거기엔 등대 모양의 건물이 있었다.
항구로 드나들던 배들을 안내하기 뒤한 위해 세웠을 것이다.
어릴 적 영도 청학동에도 '신호대'라는 곳이 있었다.
지금 영도구청이 자리한 언덕인데
일본인들이 만들었을 것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군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 언덕 아래 판자집에 살던 우철이라는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세상에! 공항에 기도실이 있었다!
아마도 하루에 몇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해야하는
무슬림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

아시아를 가장 잘 말해주는 도시를 꼽으라면
아마도 홍콩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아시아의 고통과 대응 사이에서
기형적으로 형성된 도시.
초국적 자본의 거점이 되어버린 곳.
그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곳으로 모여든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
발 디딜 틈 없는 거리,
어지러운 간판,
가끔 난폭한 사람들.

나는 도시를 좋아한다.
하지만 도시의 대기 속에는
외면당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도시의 소음 속에는
차마 질러내지 못한 비명이 잔향처럼 울리고 있다.
도시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그 속에 깃든 피의 냄새도 맡는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타이쿠싱(太古城)에 홍콩 필름 아카이브가 있던데...
옛날 홍콩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던데...


*


P.S.

그 옛날의 '스카이하이'의 주제가가 실린
동영상을 링크한다.
영화의 원제목은 'The Man From Hong Kong'.
어린 시절의 홍금보도 보인다.


출처: 조 타운슬리 복싱매거진
http://blog.naver.com/townsley/110123526521



*

P.S. 2

지난 8월 27일 HSBC 빌딩 지층에 있던 농성장은
306일만에 경찰들에 의해 강제철거 되었고
마지막까지 농성을 이어가던 이들은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7월 1일 홍콩에서는
40만의 시민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한다.
거기에는 본토에서 온 시위대도 합류했고
그들은 중국으로 끌려가 지하감옥에 갇힌 후
노동교화형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중국 정부의 '국민교육'에 반대해서
8000명의 대학생과 강사들이 파업 등으로
항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소식들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구나...
피상적으로 보고 왔다는 반성...ㅠㅠ









2012/09/01 15:48 2012/09/0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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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 2012/09/04 01: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홍콩 다녀온 영상이 있긴한데.. 너무 정신없이 다녀서.. 기억도 잘나지 않습니다.
    같이갔던 일행과 뜻도 안맞아서 제각기 놀았었죠.. 지금 그나마 찍어놓은 영상덕에 갔다왔다는 인증정도는
    하고 있습니다. ^^

    • 마분지 2012/09/04 17:54  address  modify / delete

      마니님이 만드신 영상, 블로그에서 본 적 있습니다.^^

      여럿이 가는 여행이란 대체로 정신이 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두고 머무를 여유도 없죠.
      특히 홍콩 여행은 유명한 관광 사이트와 쇼핑, 식사 등에
      국한 되는 여행이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2. 2012/09/09 01:1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타일벽 예쁜데요..
    가족과 함께 가신 여행이지만 사진 자체는 혼자 여행다니시면서 찍은 것 같은 느낌이 ㅎㅎ
    곳곳에 숨어있는 즐거움들을 즐기고 오신 것 같아서 좋습니다~
    뭔가 저도 언젠가 홍콩을 가보고 싶어지네요!

    • 마분지 2012/09/10 03:29  address  modify / delete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들을 찍은
      사진들만 올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진엔 빠져있지만 피크트램도 타보고
      또 장국영이 자주 갔다던 딤섬집도 다녀왔습니다.^^
      혼자였다면 그런 곳엔 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나름 재미있었지만
      가족여행과 개인적인 목적이 섞여있어
      좀 어정쩡했다는 아쉬움이....

  3. 요요 2016/07/13 09:4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한번 올려보아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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