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남아있는 헤드라인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문장입니다.


"고통은 왜?"


중학교 때,
어느 선배가 카톨릭에서 나온 소책자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표지에는 계단에서 한 사람이 머리를 감싸고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있고,
그 위에 "고통은 왜?"라는 제목이
씌어있었습니다.
오래오래 그 소책자의 커버는
제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삶을 향한 눈이 막 열리기 시작하던 어린시절,
마음을 열고 들어와
모호하게 존재하던 내 안에 있는 질문들을
분명하게 만들며 자리 잡았던 헤드라인.
비록 그 소책자를 읽지는 못하였지만
그 헤드라인은 오래오래 내 속에 남아
두고두고 고통이란 것이
왜 존재해야하는지를 생각케 하였습니다.

도피하고 싶기도하고
또 다른 즐거움이나 보상으로 덮어버리고도 싶지만
고통이란 것은
근본적이고 회피할 수 없이 존재하는 것임을
역설이나 하듯이 남아있던 헤드라인.
 

"사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소위 공익광고라고 부르는 신문광고의
헤드라인이었습니다.
어느 회사나 기관에서 만든 것인지는
기억 나지 않습니다.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고
그 위에 헤드라인이 있었습니다.
주름살의 골을 깊게 팠을
오랜 시간의 노고와 삶의 신산함.

직장생활을 막 시작할 때였고,
이 사회에서 스스로 벌어 먹고 산다는 것이
참으로 만만치 않은 것이구나...라는
저의 생각을 정확히 뚫고 들어온
헤드라인이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이십대의 젊은이였지만,
세상으로 나와서 스스로 벌어먹고
살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정서라는 것은
그 "만만치 않음"이란 단어로 집약되었던 것입니다.

나의 처지가 거리에 나 앉은
노인분들과 같은 것도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사회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느끼던 아득함을
그 주름진과 헤드라인은
말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내 속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인생을 사는 것인데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은 바른가?
 

"너 행복하니?"


또 다시 헤드라인이
내 마음을 두드린 것은 2000년의 일이었습니다.
이 카피는 TV광고에서도 수 없이 나왔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른 회사엘 갔다가
다시 다니던 회사로 복귀하여
일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고
소위 대박이란 것도 터졌는데
과연 이것이 내가 진정 바라던 것이었나,라는 생각이
마음의 저변에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미지름 만들고
글을 쓰고
다른 이들의 행동을 유발하려는 이러한 일을 하면서
거의 매일의 야근을 하고
때로는 밤을 새는 날들.
과연 이것은 행복한 것일까...

미디어를 통해
무수히 제공되는 행복의 이미지.
스스로 잠잠히 생각하고 결론 내릴 틈도 없이
이미 존재하는 거짓의, 혹은 기성의 답들을 차용하면서
나의 답인 양 살아왔던 것은 아닌가...
그것들이 과연 옳은 것인가...
과연 네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내 마음에 남아있는 헤드라인들은
질문을 던지는 헤드라인들이었습니다.

질문은 지금껏 자기가 안주하고 있던
우주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균열이 생기게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와 싸우게도 합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질문을 시작할 때,
이미 누군가 써놓은 모범답안이 아닌
자기의 답을 향한 걸음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세상은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더디고 느린 생을 사는 것이고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시간보내기라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결코 답은 찾아지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무수히 존재하는 행복의 허튼 이미지들.
그것에서 해방되어  자기의 행복을 만나는 길.
첫 걸음은 질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지금 여기, 자기자리에서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보기.

2003. 2.5







questions / manfred mann's earth band

2003/02/05 00:00 2003/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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