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 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가을이 오니 떠오른
시 하나 올렸다.

최승자.
대학 시절을 강타한 시인이었다.
몇 권의 시집을 내놓은 후
몇 가지 풍문 만을 접하고 있었는데
다시 시집을 낸 것이다.
살아있었고
시를 쓰고 있다.

2010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쓸쓸해서 머나 먼' 이란
새로운 시집을 출간했다.
서점으로 직접 가서 사야겠다.


*

시 하나 더 옮겨보자

일찍이 나는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
너, 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



어느 평론가의 블로그 글
GQ 인터뷰 '승자의 노래'
시인의 트위터
2012/09/23 23:14 2012/09/2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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