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타 클로즈의 얼굴을 한 어른이
작은 아이들에게 묻는다.

"얘들아 상자가 두 개 있어
그런데 들어있는 것들은 정반대야.
자 잘들어봐.
하나는 폭탄이 든 상자,
또 하나는 과자가 든 상자야
넌 어떤 걸 받고 싶니?"

돌연 아이들은 말이 없다.
그러자 산타 클로즈가 말한다.

"왜 대답이 없는거니?"

한참의 침묵이 흐른다.
그러다 한 아이가 쭈뼛거리며 말한다

"다른 것은 없나요?"

순간 아득한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이 잦아들자.
산타 클로즈는 순식간 사라져 버리고
이상한 괴물이 아이들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다.

그리고 그 괴물은 말한다.

"너에게 줄 상자는 없어"

그러자
아이들은 울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울기 시작한다.

오직 신만이 멈출 수 있는
그 울음은
영영 그치지 않는다.


*

71년, 혹은 72년의 어느 날,
앞집과 같이 쓰던 마당에
향긋한 나무 냄새가 폴폴나는
커다란, 아이들의 눈엔 집채만한
상자가 운반되었다.
월남전에 군인으로 간 앞집 큰형이 있어
미국이 보낸,
무언가 못보던 것들로 가득한 상자였다.
미군의 규정에 따라
참전한 병사의 모든 가족에게 보내는
선물 같은 거였다.

생전 처음보는 커다란 나무 상자가
마당에 떡 버티고 있었고,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아이들로
마당은 이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풍경은
아프리카의 오지 어디에 실수로 떨어진
문명세계의 물품을 가득담은 상자처럼
아주 생경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또한 마당의 주인인양
늘름하게 떡 버티고 있었다.

나무 상자의 못을 뽑아내자
(사실 누가 못을 뽑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두 그 속이 궁금했으니까)
라면 상자 크기의 갈색 나무 상자가 나왔다.
레이션 박스였다.
갱지노트를 쓰는 것이 당연한 시절에
독특한 이국의 냄새를 풍기는 종이 상자는
아이들에게 너무도 경이로웠다.
과연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그 집의 아이가,
맨날 늦잠을 자서 엄마에게 함경도 사투리로 욕을 먹던,
아이가 상자를 하나 열었다.
세상에,
그 속은 듣도 보도 못하던
과자로 가득차 있었다.
아이들은 숨을 죽였고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꼴깍 넘기는 소리가
아마도 안방의 구들장을 울렸을 것이다..
늦게까지 젖을 떼지 못하던 앞집 아이는
일약 스타가 되고 말았다.
녀석에게 잘 보여야
뭔가 하나라도 얻어 먹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과자가 다양하지만
그때는 새알 초코렛도 없었고
사브레라는, 지금은 거의 먹지도 않는 비스켓이
최고급의 과자였던 시절이었다.

*

그무렵,
인도 차이나의 북쪽의 아이들 머리위로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상자를 벗길 필요도 없었고
껍질을 깔 필요도 없이
그냥 먹을 수 있는,
아니 그냥 먹을 수 밖에 없는 과자,
폭탄이었다.

*

아메리카.

그 나라는
어느 곳에서는 폭탄을 떨어뜨리고
어느 곳에서는 과자를 떨어뜨린다.
그 상자들은 까마득한 하늘로 부터
아이들의 머리로 떨어진다.
그 누구도 아닌 아이들의 머리위로
늘 새것에 못 보던 것에 굶주린
아이들의 머리위로.


*

내가 아이였던 시절에나
내 아이가 그때의 내 나이로 살아가는
지금이나...

다른 선택은 허용되지 않는다.
위대한 아메리카.







paint it black / rolling stones

2003/02/13 00:00 200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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