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5월 13일 부산일보

from 나날 2013/07/10 03:55


일제말기 조선인 동원과 통제의 말단 조직이었던
'애국반(愛國班)'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1941년 5월 13일 부산일보를 발견하게 되었다.

가운데 박스에 들어있는 것은 영화광고인 것 같다.
'日活 京都'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영화사 '니가츠'의 교토 지사에서 만든 영화인 것 같다.
그런데 2본 동시상영인가?
점 선 아래에는 '맹수영화 보루네오'라고
되어 있는 것 같다.

'보래관'이라는 극장은
지금의 신창동에 있었던 것 같다.

*

그런데 영화 광고 옆에
'백의의 용사 강연'이라는 기사가 있는데
'일본 메소디스트 부산교회'주최라고 되어있다.
아마도 전쟁터에 다녀온 이들의 체험을 듣는 것 같다.
메소디스트(Methodist)란 감리교를 말한다.
조선의 감리교는 일찌감치
신사참배를 애국적 행사로 받아들이고
교단의 생존을 위해 1940년
일본메소디스트교회와 연합했다.
즉 일본감리교의 산하에 들어갔다.
일본은 조선의 모든 기독교 단체들이 유지하고 있던
일본 외의 세계와의 관계를 모두 끊게하고
일본 기독교 단체 아래로 통합했다.
물론, 그 일본의 기독교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충성하는 조직이었다.
일제시대 말기 조선의 교회들은
내선일체와 황도실천을 계몽하며
일본의 전승을 위해 기도하고 강연회를 여는,
전쟁을 위한 센터가 되었다.
그런데 죽음으로
그것에 항거한 이들도 있었다.
비록 그들의 신앙은  
말세론과 미국의 근본주의에
많이 기울어 있었지만,
그들의 신사참배거부 체험을 통해
개화기에 들어온 기독교는
한국의 기독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근데 1941년 5월이면,
어머니도 태어나기 전이로구나.

'보래관'이라는 극장이 있던
신창동은 국제시장 쪽이다.
일제 시대엔 주택가였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되었고
그후 그곳에 6.25 피난민들이
시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언제나 걷고픈 고향 거리.
눈에 선하다.







 










2013/07/10 03:55 2013/07/10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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