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상영을 마치고

from 나날 2015/03/30 15:31
오사카에서의 상영회를 마치면
블로그를 재개하리라 생각했지만
그간 작업 마무리가 너무 힘들었는지
몸도 여기저기 아팠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생각을 정돈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러다간
영영 쓰기 힘들 것 같아
글을 올려본다.

나로서는 아주 중요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였기에
상영회와 일본에서의 며칠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



머무는 동안 언제나 전철 소리가 들렸다.

대체로 경쾌하게 들렸지만
늦은 밤 멀어져가는 전차의 소리는 애잔했다.
술에 취에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혼자가 되어 집으로 가는 전차의 소리.

오사카 우메다(梅田)의 나카츠(中津).
교토로 가는 철도와 고베로 가는 철도가 지나가는 고가.
그 아래를 자주 지나다녔다.


*

상영회는
다케쿠니 선생님이 일하시는 오사카 가와이즈쿠(河合塾)의
일한문화교류연구회(日韓文化交流研究会)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일한문화교류연구회는 이미 20년 전부터
한국의 젊은이들과의 교류를 계속해왔고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이들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여는 등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기억으로부터".
일본어 제목은 "記憶から".

상영이 끝난 후에는
한사람 한사람의 감상을 듣고
질의 응답시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은 긴장한 탓인지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마친 후 저녁을 함께 하며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삶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어를 몰라서도 그렇겠지만
좀 더 내가 여유있는 상태로 갔다면
나눌 이야기에 대해
무언가 좀 준비를 했을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어쩌면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애초에는 이 장면을 넣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편집이 막바지로 달리면서
자연스럽게 이 수선화 이미지를 넣게 되었다.
편집이 클라이막스로 달리면서
스스로 피어난 꽃.

이 수선화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1980년 아버지의 장지로 가는 장의차 안에서
나는 수선화 화분을 들고 있었는데
잠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화분을 보았을때
그 사이 수선화가 피어있었던 것이다.
겨우 몇 초 정도 사이에 말이다.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몇몇 기억 중의 하나.

그 후로 가끔 이 일을 떠올리면
우주의 한 없는 비정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 편집을 마치면서
그 순간은 어린 나의 슬픔에 대한
어떤 위로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상영회를 마치고 하루를 쉰 다음,
아라이 선생님고대박 선생님과 함께
오사카성과 츠르하시(鶴橋)를 찾았다.





무거운 돌을 쌓아올린 성.
그것도 일본답게 외곽에 날이 서도록
반듯하게 세워 올렸다.
그와는 반대로 매화 나무는
제가 원하는 대로 가지를 뻗었고
여린 꽃들을 피웠다.

*

재일교포들이 많이 살고있는
츠르하시 시장을 찾았다.
이 역은 냄새부터 다르다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다.
역을 나오자마자 시장이 이어졌다.
다른 역들과 구별되는 특유의 냄새는
전을 부치는 기름과 한국 음식들 때문인 것 같았다.
다른 어느 곳과도 다른 공기 속을 걸어
시장을 구경했다.



시장통 위를 덮고 있는 이런 지붕을 보니
어슴프레하게 어린 시절 청학동 시장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츠르하시, 이쿠노(生野) 등의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이카이노(猪飼野)'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주로 제주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
한자의 뜻을 그대로 새기면 "돼지를 기르는 들"이다.
고향을 등지고 먼곳에 와서
생소한 사회의 변두리에서 고생하며
아이들을 기르며 살아왔던 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해졌다.
안내를 해주신 고선생님도
부모님이 제주 출신.



이런 사진집을 선물 받았다.
1960년대 이카이노의 삶을 기록한
제주도 출신 조지현의 사진을 엮은 사진집.
그 중에서 한 장을 올려본다.

20101001204518
                                                                                                                   이미지 출처_클릭
아이들, 그림자 연극에 빠져있는 아이들의 얼굴.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을...
이 얼굴들 어디에 한국이 있고 일본이 있으며
재일이 있는지...


*

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말하자면
'나그네'이다.

구약이건 신약이건 성경은 말한다.
나그네, 뜨내기를 대접하라고.
어쩌면 너 자신이 나그네로 살라는 것이
성경을 관통하는 핵심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커다란 이름을 바라지 말고
작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라는 것.
신이 직접 나그네가 되어 이땅에 와서 죽었다는 것,
그것이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영화는
그 전에 내가 속했던 곳으로 벗어나면서
스스로를 지탱하며 나아갈 힘이 될만한
근거를 찾기 위한 안간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나는 세상의 눈으로는 실패한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았고,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 속에서 어떤 긍정을 발견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야 내가 나아갈 수 있으니까.
과장처럼, 혹은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억으로부터>는
내가 '살기 위해' 만든 영화이다.
사실 많은 예술 행위는
죽음을 넘어서기 위한
싸움일 것이다.


*



바다로 달려가는 산의 어깨에 들어선 도시.
다케쿠니 선생님의 안내로
고베(神戶)를 걸어다녔다.

고베는 개항과 더불어
외국인들이 많이 살게되면서
세계의 다양한 문물이 뒤섞인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도시이다.

위에 있는 판화는
평생 고베의 풍경만을 판화로 옮겼던
가와니시 히데(川西英)의 작품.




일본이니까 당연히 여러 군데에 신사가 있다.
산비탈에 있는 신사의 입구.
아마도 스와야마 신사(諏訪山神社)로 가는
입구인 것 같다.

고베에서 제일 중요한 신사는
이쿠다 신사(生田神社)인 것 같다.
고베(神戶)라는 도시의 이름도
그 신사에서 비롯된 것 같다.




개신교 교회인 고베 에이코 교회(栄光教会,영광교회).
1995년 대지진 때 무너진 것을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무슬림을 위한 사원의 입구.
아주 크고 멋진 돔도 가지고 있다.



1910년 세워진 시모야마테(下山手) 성당 자리.
대지진으로 허물어진 뒤
이제는 몇 개의 기둥만이 남아
그곳을 기념하고 있다.



고베에는 중국인들도 많이 살았으니
중국 사원도 빠질 수 없다.
관제묘(關帝廟).
관제묘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동(남)아시아 바닷사람의 여신인
마조(媽祖)상도 있다.
역시 바닷가의 도시 답다.

*

고베는 한국의 개신교에서도 중요한 도시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학교 문을 닫고 떠났던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의 거점도 고베였고
부산 경남 교회의 많은 목사들이
고베 중앙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조선의 교인들과 연대했던
오다나라치(織田楢次)서, 니시다 쇼이치(西田晶一) 목사도
고베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한국 보수 기독교에서
사회성은 증발시키고 성자의 이미지만을 팔아먹는
카가와 토요히코(賀川豊彦) 목사도
고베 중앙신학교를 나왔고
고베의 빈민가에서 생애를 보냈다.


*



길을 걷다가 발견한 동백꽃.
내 고향의 꽃을 바다 건너 먼 도시에서도
발견하고는 반가워서 한 장.


*



해안쪽에는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살았던 구역이 있고
이런 고색창연한 서양식 빌딩들이 많다.



신항빌딩(神港ビル) 안에 있는 커피숍.
1930년대에 지어진 신항빌딩은 일본의 패전 후
미군들의 헤드쿼터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커피숍은 건물이 생길 때 부터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커피도 한 잔.



수평선을 향해 달리는 부두.
'메리켄 하토바(メリケン波止場)'라고 한다.
메리켄은 아메리카에서 온 이름이라고 한다.



고베는 브라질 이민이 시작되었던 곳.
그것을 기념해서 바닷가에 조형물을 만들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아버지는
브라질 이민을 고민하셨는데 결국 접으셨다.
아마도 어머니와 의견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먼저 떠나는 친구분을 만나서
절차와 방법에 대해 길고 긴 대화를 나누셨고
나는 그 옆에서 숨을 죽이고 들었다.
얼마나 조용하며 진지한 대화였는지
나는 입에 문 사탕을 굴리는 소리도
침 삼키는 소리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우리 가족이 이민을 갔다면
낯선 땅에서 고생은 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것 같다.


*



산노미야역(三ノ宮駅) 부근
기타나가사도리(北長狹通)에 있는
'아레아레(アレアレ)'라고 하는 스탠딩 바.
선술집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아주 깔끔하고 멋진 곳이다.
주인장은 일본 남자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과묵하고 쿨한 사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한다.

실내에는 1970년대의 팝이 계속 들리고
젊은 여자건 나이든 남자건 편하게 들러서
가볍게 한 잔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좋은 곳.
고베에 가신다면 강력 추천.
주소는 神戶市  中央区北長狭通 1-20-6
山脇ビル1F北


*

고베의 한자표기는 '神戶'이다.
원래는 일본의 중요한 신사 때문에
생긴 이름이겠지만
직접 돌아보니
일본의 신 뿐 아니라
서양의 신, 중국의 신, 아라비아의 신까지
많은 신들이 모여있는 도시이다.
그러므로 '神戶'라는 이름은
개항 이후에 오히려 더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산과 바다가 부딪히는
좁은 지점에 형성된 시가지와
비탈길의 집과 교회, 신사들.
내 고향 부산을 닮았다.

너무 피곤한 탓에
오사카는 제대로 보지 못해서
뭐라 말 할 수 없지만
고베는 다시 방문하고 싶다.



*



이제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도 다르고
그렇다고 에세이 영화라고 하기도 그렇고,
인터뷰 부분들을 제외하면
짧은 쇼트들로 점철된
계속 보기에 피곤한 길고 긴 영화.

TV에서는 결코 방영이 되지 못할 것이고
한국에서의 상영도 쉽지 않을 영화,
열 다섯 소년으로 돌아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린, 그런 영화.
나의 가장 아프고 중요한 부분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내가 아는 누군가가 보는 것도
조금은 꺼려지는 영화이다.
일본에서 소수에게 보여진 상영회가
가장 좋은 출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영화를 보고나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던 이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타니가와(谷川), 히라타(平田), 나카다(中田),
야마자키(山崎), 후지이(富井), 모리모토(森本),
모리가와(森川), 김(金)...
일본어를 하지 못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질문의 본뜻을 이해한 경우도
몇몇 있어서 아쉽다.

*

미리부터
다음 작업에 대한 계획이 있었는데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야겠다.
이 작업을 통해 내가 이른 곳을
조금 찬찬히 살피며
다음을 생각해야겠다.

다시 하루하루
나아가자.











2015/03/30 15:31 2015/03/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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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 2015/04/01 03:2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 상영회라니 정말 멋지십니다.
    전계획만 수년째인데. 도무지 시작이 안됩니다.
    시작만 하면 뭔가 될듯도 한데.. 참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하시던일의 일부를 마치신거 같은데.. 환절기 건강도 잘챙기시고 더 멋진 작업도 이루어지시기 바랍니다.

    • 마분지 2015/04/01 23:08  address  modify / delete

      차차 만드시면 되죠.
      무언가 마음에 부딪혀 오는 게 있겠죠.
      근데 친구넷이 없어졌나봐요?

  2. mani 2015/04/03 21: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저도 몰랐네요,, 서버 정리를 하는건지.. 분위기로 봐서는 없어진거 같네요..

    • 마분지 2015/04/05 01:16  address  modify / delete

      저에겐 중요한 곳인데 아쉽습니다.
      다큐 작업을 마치면
      다시 찾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몇 달 전까지도 있었는데...

      동영상 편집을 배울 수 있는 곳도 늘어나고
      또 아무래도 DSLR의 시대이니까 그런가 봅니다.
      편집을 배웠던 DV유저,
      처음 영상을 공개했던 캠유저,
      편한 마음으로 영상을 올렸던 친구넷.
      모두 사라졌군요...

  3. 오씨여인 2015/11/03 23:3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떤 영화인지,, 오사카 쯔루하시에 살고있습니다

    • 마분지 2015/11/04 15:01  address  modify / delete

      반갑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남북 분단으로
      12살에 38선을 넘어오셨는데
      평생 고향에 가지 못하시고
      부모님 생사도 모르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젊을 때에는
      일본제국주의가 전쟁동원을 위해 강요했던
      국가신도에 의한 신사참배에 저항하고
      고통을 받았던 이들이 세운
      신학교를 다니셨죠.
      그리고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남북 분단과 일본의 지배,
      그리고 기독교의 문제를
      개인사와 함께 엮어서 이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 같은 것도 들어있는
      길고 지루한 영화입니다.

      저는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
      힘이 들면 고향을 찾곤 했는데
      아버지는 고향에도 갈 수 없었구나,하는 생각이
      십 수년 전에 들었고,
      아버지의 심정을 조금 헤아리게 되면서
      시작된 영화입니다.

      작은 한 사람의 삶 속에
      근 현대사의 문제와 굴곡이
      고스란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한국에서도 상영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 대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츠르하시에 사신다니,
      지난 3월에 걸었던 츠르하시 시장,
      코리아 타운이 떠오릅니다.
      후게츠의 오코노미야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