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여름

from 나날 2016/08/22 14:45


비 한 번 제대로 내리지 않고 여름이 저물고 있다.
이처럼 비가 내리지 않은 여름은
내 기억 속에 없다.

대단한 무더위가 계속되었고
공교롭게도 폭염 주의보가 내린 날에는
촬영을 하러 땡볕 속으로 나갔다.
원래는 고향의 어느 길에 얽힌 이야기를 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시간과 비용 문제로 보류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와 사무실 주변,
그리고 서울의 몇몇 장소를 담아오고 있다.
지금 여건에서 '만들 수 있는' 영화를
내게 가장 익숙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힘들었던 여름 파트의 촬영을 끝냈다.
여기 저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더 이상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시간도 날씨도 내 편이 아니고
여름을 잘 견디는 나의 기력도
이제는 고갈된듯.


*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야.
이런 시체말 속에 진실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 새로운 길을 찾아 가는
버거움은 만만치가 않다.
생업까지 때때로 위태로워지는 요즘.

그러나 푸념은 하지 말자.
내 오랜 질문이 단단한 핵심에,
아니 어쩌면 텅 빈 동공에
아주 가까이 다가섰다는 기분이 든다.
그게 답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조금 더 걸어가자.


*

이상한 여름이 저물고 있다.
브레송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비라도 좀 내리기를.









2016/08/22 14:45 2016/08/22 14:45
Tag // ,

Trackback Address >> http://lowangle.net/blog/trackback/723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6/08/26 10: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늘은 비가 와 선선하네요! 저도 요즘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의 중요성을 더 많이 느껴요 거기에서 작업이든 활동이든 자신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무더운 여름은 이제 어느정도 지나간 것 같네요 고로웠던 여름동안 야외 촬영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ㅎㅎ

    • 마분지 2016/08/26 19:48  address  modify / delete

      그러게요.
      하루 만에 가을 기운이 느껴지네요.
      하늘도 맑아져 먼 산도 보이고
      이파리들도 예쁩니다.

      애초의 계획과 다르게
      어쩔 수 없이 작업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정돈하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하고...
      며칠 느슨한 마음으로 지냈으니
      다음 주부터는 조금 집중해얄듯

      여름 잘 마무리 하시길...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