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간다

from 나날 2018/12/26 12:00


오랫만에 성탄절 카드를 그려서 올릴까 했는데,
나무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상영한 해였으니까
겨울 나무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한다.
사무실 근처, 밤의 나무.

좋은 한 해였다.
해가 가도 이런저런 문제는 여전하고
앞날도 뭐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여기까지 온 것이 감사하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
영화제에서 만나 이야기해주신 분들,
그리고 이후의 상영 기회를 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마도 내게 새로운 시기가 시작된 것 같다.
옳다고 믿는 길로 천천히 가다보면
꼭 생각하던 어떤 곳이 아니라도
조금은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그러므로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재작년, 촬영을 하다가
이 길을 걸어갈 때의 일이었다.
먹고 살기도 힘들고 앞날도 깜깜한데
제대로 되지도 않는 촬영을 한답시고
삼각대를 끌고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내 꼴이
도대체 무언가 싶은 심정이
갑자기 나를 짓눌렀다.
그때 문득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고
큰 위로를 받았다.
그 위로에 힘 입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었고
영화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때의 걸음 걸이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의 바닥에 열린 길을 따라
나아가는 하루하루.

생명과 사랑 외에 중요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




그네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두어 달 전 어두운 밤,
중학생으로 보이는 작은 아이가
가만히 이 그네에 앉아있었다.
큰 가방을 메고 앉아서
저만치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시선을 두지 못하고
그저 망연한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아픈 일이다.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말하기 어려운 일에 시달리다가
낯선 동네까지 걸어와서 그네에 걸터앉은 아이.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에
걸려있는 작은 마음.
그 보다 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어떤 엘리베이터의 CCTV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던,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아이의 마지막 모습.
아무도 곁에 없고 아무데도 갈 수 없어서
엘리베이터 속에서 쭈그려 앉아 흐느끼던 아이.
며칠 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한 비정규직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정말, 작은 사람들이
끝 없이 죽어가는 세상이다.
내가 열심히 일할수록
작은 사람들의 삶이 더 위태로워지는 세상.
그런 삶을 벗어나기 위해
참으로 오랜 시간 애썼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정의와 사랑이 만나는
그 나라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 나는 또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또 어떻게 새로운 힘을 낼 수 있을까?
오늘은 위태롭고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길을 믿을 수 없으니
이 걸음을 계속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므로, 그저 걸어가기로 하자.
거기에 온전히 이르지 못하더라도.

내일을 믿자.





 



2018/12/26 12:00 2018/12/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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