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제일 컸던 나무

from 나날 2021/03/15 15:15


아파트 단지에
작은 도서관을 만든다면서
키가 제일 큰 플라타너스를 잘라버렸다.
내 다큐에도 등장하는 나무.
현장에 나와서 보았다면
도면을 조정해서 이 나무를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원래 이랬던, 하늘의 비밀을 전해줄 것 같은
높다란 나무였다.

*

글이 제대로 읽히지 않아서
멍하게 있다가 잡은 것이
<장자>였다.
몇몇 이야기를 알고 있을 뿐인데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해서
막상 읽게 되지 않던 책.
그런데 알려진 앞 쪽의 이야기들 보다
뒤 쪽에 있는 내용들이
마음을 끈다.

열자(列子)의 이야기.
자신이 여태 헛공부 했다는 걸
깨달은 열자가 취한 삶의 태도 같은 것.

"그후 열자는 자기가 아직 배움을
시작조차 못했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
삼 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돼지도 사람 대접하듯 먹이고,
세상 일에 좋고 싫고를 구별하지도 않았습니다.
깎고 다듬는 일을 버리고
다듬지 않는 통나무로 돌아갔습니다.
흙덩어리처럼 홀로 그 형체만으로 서서
여러가지 엉킴이 있어도
그는 봉한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한결 같은 삶을 살다가
일생을 마쳤습니다."

자신의 헛됨을 인정하고
아무 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가버린 경지.

*

걷고, 찍고, 쓰고, 읽던 사람이
그 모두를 멈추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읽고 있지만
쓰는 것은 아직인 것 같다.
전에 써둔 것을 오늘 조금
들여다 보았을 뿐.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몇 개월을 사이에 두고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걸어가자, 라고 쓰며
이 포스트를 매듭짓자니
이전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마음 같아서는 열자처럼
두문불출하고 싶지만
먹고 살 일을 도모해야하니...

어쨌거나,
걸어가자.



















 









2021/03/15 15:15 2021/03/1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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