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보내고

from 나날 2022/03/16 16:16


원고를 보내고 나니 고칠 곳이 보인다.
어쨌거나 지금은 내 손을 떠났다.
아주 짧은 소설들로 쓴
스물 세 편의 영도 사람 이야기.

글을 쓰는 동안
종종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글로는 닿기 힘든
어떤 것이 보이곤 했다.
앞으로 그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고,
몸도 아파서 웅크리고 있던 시간.
이 작은 책을 쓰면서
나를 수습한 것 같다.

조금 위로가 되었던,
<장자>에 나오는 글을 옮겨 본다.
자사가 아픈 자여를 찾아가서 묻고
자여가 답하는 내용이다.

자사가 물어보았습니다.
"자네는 그게 싫은가?"
(자여가 답했습니다.)
"천만에 싫어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내 왼팔이 점점 변하여 닭이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새벽을 깨우겠네.
내 오른팔이 차츰 변해 활이 디면,
나는 그것으로 새를 잡아 구워먹겠네.
내 뒤가 점점 변하여 수레가 되고
내 정신이 변하여 말(馬)이 되면,
나는 그것을 탈 터이니
다시 무슨 탈 것이 필요하겠나.
무릇 우리가 삶을 얻은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요,
우리가 삶을 잃는 것도 순리일세.
편안한 마음으로 때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리에 따르면 슬픔이니
기쁨이니 하는 것이 끼어들 틈이 없지.
이것이 옛날부터 말하는
'매달림에서 풀려나는 것(縣解)'이라 하는 걸쎄.
그런데도 이렇게 스스로 놓여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세상의 모든 사물은
하늘의 오램을 이기지 못하는 법.
내 이를 어찌 싫어하겠는가?"  

*

아무 것도 못할 것 같던 날들이
중요한 것들을 다시 새긴
시간이 되었다.

고개를 들고 사방을 보니
봄이 왔구나.












2022/03/16 16:16 2022/03/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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