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살던 곳

from 영도 影島 2022/04/06 16:30

아이의 이름은 SC라고 쓰겠다.

부모와 함께 시골을 떠나
부산, 그것도 영도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공사 맞은 편
봉래동 언덕 아래의, 작은 집들이 늘어선
이 골목에 살게 되었을 것이다.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
아주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골목.
그리고 동네 친구들을 따라
내가 다니던 교회에 나오곤 했다.

머리칼은 노란 빛을 띠었고
조금 졸린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 별로 없었다.
그 아이와 특별한 대화를 나눈 기억은 없다.
몇 마디 말이 오갔던 것 같기는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아이가 떠오르면
기타리스트 줄리앙 브림이 생각나곤 했다.
얼굴의 윤곽과 힘없어 보이는 웃음이
닮아 보였다.

그런데 SC는 중학교 때
동삼동 앞바다에 놀러갔다가
그만 익사하고 말았다.
함께 갔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한참 헤엄쳐 가다가 돌아 보았더니
따라오던 SC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를 삼킨 바다는
지금 땅이 되어 있다.
예전엔 서바리라고 불렸던 곳.
그 위에 박물관이 들어섰고
해양관련 기관들이 가득한
시가지로 바뀌어 있다.
옛날의 모습은 짐작도 할 수 업다.
거기 있던 어촌 마을도, 어선들도,
물위에 떠 있던 원목들도 다 사라지고
이제는 사람들이 거기서
헤엄치며 놀았다는 기억조차
매립되어버린 것 같다.
바다가 사라지면
거기 얽힌 이야기들은
모두 어떻게 되는 걸까?

*

우리는 자기가 누리는 것을
당연히 여기기 쉽다.
내가 노력한 만큼,
또 내가 지불한 만큼
정당한 무언가를 누린다고 생각할테지만
우리가 취하는 대부분의 것은
누군가의 삶을 갈아넣은 것들이다.
택배가 2,3일 안에 도착하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설렁탕 위에 파를 듬뿍 뿌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전철이 역과 역 사이를 2분에
주파하는 것 또한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연함을 위해
너무도 많은 삶이 희생 당한다.
비정규직, 외국인근로자,
2인 1조가 지켜지지 않는 위험한 근로환경,
장애인의 고통...

SC의 부모님도
그런 고단한 삶을 사셨을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시골생활을 접고 도시의 귀퉁이에 끼어들어
저임금의 힘든 일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 노동력이 모여서
경제성장이란 걸 이루었지만
그 열매는 지극히 불평등하게 나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멸된 삶은
기억되지 않는다.

SC의 부모님은 어떻게 살고계실까.
지금 팔순 언저리의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잘 기르고 싶어서 데리고 온 아들을
잘 기르고 싶었던 곳에서 잃어버리고
힘든 삶을 이어가셨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SC와 그 부모님의 것만이 아닐 것이다.
그 험한 삶들이 이루어낸 것 위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영도는 그런 곳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제주를 떠난 이들이,
전쟁으로 고향을 잃어 갈곳 없던 사람들이,
쫓기듯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올라온 이들이
모여서 살던 섬이다.
그렇게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힘들게 일하며 살아온 곳이다.
경제성장이란 것을 자랑삼는 나라에서
누구보다 존중 받아야하겠지만
그러지 못한 삶들이 모인 그늘 같은 곳.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너무도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이 주인인 이 사회에서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이들이
모여 살아온 곳.

*

영도의 사진을 찍으며 오가다가
어린 시절의 길에도 발을 들이게 되었다.
오래 전 내 마음에 새겨진 장소들.
거기 얽힌 이야기도 말할 기회가 있을까?
그러기를 바라지만 장담할 수 없다.  
아무튼 몇몇 장소를
먼저 말해 볼까 한다.














2022/04/06 16:30 2022/04/06 16:30

Trackback Address >> http://lowangle.net/blog/trackback/813

댓글을 달아 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