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는 라면집이 있던 곳이 보이지 않는다.
복개천 옆의 가파른 비탈길로
한참을 더 올라가야 그 곳이 나올 것이다.
식당도 아니고 잡화점도 아닌,
손님이 있을 것 같지도 않는 자리에
'라면'이라고 써 붙였던 가게.

200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고향에 내려가서
어릴적 살던 동네를 넘어
가파른 길을 걷던 중에
'라면'이라는 글자를 보고는
갑자기 출출해지면서 들어간 곳이었다.
젊어보이는 여인이 아기를 업고
서투른 몸짓으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방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두 다리가 절단된 사내가 소주를 마시다가
검붉은 얼굴로 나를 보았던 것이다.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같은 국민학교를 다녔거나
오가면서 여러 번 마주쳤을,
나와 같은 나이거나 한 두 살 아래.
그런데 일을 하다가
다리를 잃은 모양이었다.
가장이 노동력을 잃자
생계를 꾸려갈 방도로
세는 싸지만 손님은 없는 자리에
라면집을 열었을 것이다.

라면은 맛이 없었다.
그렇게 싱거운 라면은 처음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분말 스프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조용히 그릇을 비웠다.

*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가끔 그때 그곳이 떠오른다.
아이를 업은 젊은 아낙과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에서 나온 것 같은
술에 취한 눈길,
그리고 아주 싱거운 라면의 맛.
이후로 그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몇 해 전 다시 그 언저리를 지나갔지만
라면집은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가 어디인지도 헷갈렸다.
가족은 밥벌이가 되지 않을 그곳을
오래 전에 떠났을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그때 엄마의 등에 업힌 아이는
지금 스무 살 언저리 일 것이다.
딸 아이였을까,
사내 아이였을까.

고향을 생각하다가
가끔 그 라면집이 떠오르면
뭐라 말하기 힘든
심정이 된다.

낙담한 가장이
쓰러지지 않았기를,
라면을 끓이던 여인이
희망을 잃지 않았기를,
엄마 등에 업혀있던 그 아이가
자기 미래를 걷고 있기를.
부디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길...


*

사진에 나오는 길은
등장한다.















2022/04/14 17:25 2022/04/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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