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느 성탄절에 새벽송을 따라갔다.
가파르고 꼬불거리는 길을 올라서자
성탄의 등롱(燈籠)을 내건 집이 있었다.
돌담 안에 흙으로 만든 집이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노래가 끝나자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우리들을 불러들여 식혜를 나눠주셨다.
조금 검은 빛이 났지만 따뜻하고 달콤했다.

오랜 후에 망고레(A. B. Mangore)의
남미의 산골에 사는 원주민들이 성탄의 새벽에
촛불을 들고 성당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이 곡을 들으며 어릴 적  새벽송을 갔던
비탈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가복음의 목자들처럼 가난한 이들이 살던
어둑한 비탈길.

일제 강점기에 학병으로 끌려 갔던 이가 쓴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징집된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와 치바 사이에 있는
포병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동네에 한국에서 온 할머니가
채소를 기르며 홀로 사셨다고 한다.
지금의 이나게역(稻毛驛) 부근일 것이다.
그 분은  어떻게 고향을 떠나서 거기서 혼자 살게 되었을까?.
현해탄을 건넌 여공들 중 한 분이셨던 걸까,
아니면 가족과 함께 일본에 있다가 홀로 되셨던 걸까?
그리고 일본의 패전 이후의 삶은 어땠을까?

고향을 떠나 작은 빛처럼 스러져가는
삶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어둑해진다.
내 아버지는 고향에서 이천 리 떨어진 곳에서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오래 살고 있다.
사실은 이런 조건 속에 이 문명의 운명이 있을 것이다.
실낙원의 신화로 수많은 삶을 지배한 긴 역사.
소중한 존재들을 끝없이 헤어지게 만드는 역사.
고향을 잃은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결국 우리 모두에게 또한 각각에게
타향일 뿐인 곳이 되지 않을까?
그런 곳은  아직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
바로 지옥이다.

사진 속의 집은 내가 어릴적
성탄절 새벽에 방문했던 집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비슷하다.
종이 박스나 판자로 세웠다가 돌을 쌓고
또 흙으로 틈을 메우고 나중엔 시멘트를 바른 집.
거기 살던 이들은 모두 떠나고
고달픈 타향에서의 긴 삶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2022/07/15 00:00 202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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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민예나아빠 조복현 2022/08/30 15: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요즘은 태어나 살아가는 곳이 아파트라서, 마을어귀의 당산나무나 돌담으로 엮인 골목, 뒷집 미숙이와 우물가에 사는 수경이...
    그런 고향을 기억하는이는 별로 없을것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희 아이들(영민예나)은 유치원때 이후 한번도 이사를 가지 않고 살고있습니다.
    17년째 살고 있는 오래된 단지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애들 친구는 2~3명 정도 되는것 같습니다.

    며칠전 재수하는 예나 수능원서를 함께 쓰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군대 휴가나온 영민이가 유치원때부터 같은 친구인 동네친구랑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영민에게 스므살 넘게 살아온 우리마을은 어떤곳일까. 내가 생각하는 고향과는 어떤 차이로 해석될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 마분지 2022/09/01 15:39  address  modify / delete

      치영이가 어릴 때 우리 동네라며 그림을 그렸는데 대기업의 이름이 들어간 간판들을 그려대는 것을 보면서, 아이와 나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구체적인 장소나 사람과의 접촉이 우리 세대 보다는 적을 것이고, 또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인터넷과 많은 시간을 보내겠지만, 그래도 저희 세대가 가진 고향과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즘 독립 다큐에 아파트, 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도 그와 연관된 이야기일 듯 합니다.
      예나가 대입, 그것도 재수라니! 정말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영민이도 제대를 앞두고 있고...어쨌거나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사는 것이 예전과 다름 없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새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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