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쓴 여름

from 나날 2022/09/01 15:35

8월이 지났다.
나름 애를 쓰며 건너온 여름이었다.
드러낼 것은 아직 없지만,
힘들여 무언가를 해온 날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서
몸이 조금 좋지 않아서 주춤하게된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고쳐 쓰기를 거듭하며  
더 깊고 단순한 말들에
다가가는 노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또 언제까지,
이미지를 다듬고 또 다듬어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애를 쓸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한
하루하루 단단히
걷는 수 밖에 없다.

지난 해 아플 때,
장자(莊子)를 읽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장자를 막 요약하자면,
무언가가 되는 것도 허물어지는 것도
내게 속한 일이 아니고
다만 하늘에 속한 일일 뿐이라는 것.
커다란 허탈함이었다.
내게 주어진 특별한 약속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게 내려진
저주도 없는 것이다.
빛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좀 아득한 마음이 되기도 했지만
그저 그럴 뿐이라는 말들이
이상하게 편했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만들고 써나갈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어머니 이야기를 듣기 시작할 것 같다.
그것으로 차차
영화를 만들까 한다.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고향의 전설 이야기가
중심이 될 것 같다.
태초에 큰 홍수가 나서
화왕산 꼭대기에
황새 한 마리 앉을 자리를 제하고
온세상이 물에 잠겼다는 이야기.
지금은 이 세상은
그런 이야기로 그려낼 수 없다.
다만 내가 담고 싶은 것은
자기가 태어났던
전설의 세상에서 나와
낯선 곳에서 가파르게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내 어머니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실낙원의 신화 아래 내몰린,
난폭한 세상에 직면한
수 많은 이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도 사람들의 이야기도
만들고 싶고(아마도 만들게 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래들도 담고 싶고,
바다 건너를 향한 마음들도
그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모를 일이다.
아무튼 앞으로
몇 편의 긴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몇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

날이 선선해졌다.
다만, 걸어가자.

















   



2022/09/01 15:35 2022/09/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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