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에 지나가던 길

from 나날 2020/02/10 14:10


지난 해 삼월,
중학교 때 등교하던 길을 걷다가 사진을 찍었다.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봉래동 언덕.
아래로는 여전히 조선소가 있고,
어릴 적 친구가 살았던 집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 길이 끝나는 곳에는
천박한 이름을 가진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세워지고 있었다.

많은 것이 난폭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변하고 결국 사라지지만
소멸에도 적절한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죽음 뿐 아니라 거리와 마을의 소멸에도
존엄이란 것이 있어야 할 텐데
구석구석을 무자비하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아두고 싶었지만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

지난 해, 길고 긴 글을 썼다.
고향 영도의 이야기를 소설로도 써보자는 생각.
그러니까 다큐와 소설이 한 켤레가 되는
내 고향에 대한 작업.
5백 매 쯤 써나가자 내 글을 쓰는 것  같았고
7백 매 쯤 되자 잘못 쓰고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써나갔고 연말에 이르러
1천 6백 매 쯤 되는 초고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써나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어린 시절의 책상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
종종 행복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초고를 죽 읽어보고서는
새롭게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빠지고 허망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동안 이야기를 새롭게 정돈했고
이제 다시 써나가려 한다.

사실, 20년 전 쯤까지
 매일매일 조금씩
긴 소설을 휘갈겨 쓰고 있었는데
이러저런 일로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든 후로는
소설이란 것을 거의 마음에 두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 고향에 대한 작업을 계획하면서
그 옛날에 가던 길로 다시 접어든 것이다.

초고를 마치려면
최소한 5 개월은 걸릴 것이다.
그때부터 다큐도 구체적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하나도 힘든데 둘 다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

아무튼,
매일매일 단순한 걸음으로
갈 수 있을 때까지.








 


2020/02/10 14:10 2020/02/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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