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이후

from 나날 2023/04/06 14:00


'세상이 너무 엉망이어서
신이 홍수로 심판하기까지 했다는데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누군가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랭보의 '대홍수 이후(Après le Déluge)'라는 시가 있었다.
차라리 대홍수가 다시 휩쓸어버리면 좋을 것 같은
엉망인 이 세상에 대한 한탄.
파리 콤뮨의 처참한 실패에 실망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

어머니의 고향에는
대홍수의 설화가 전해진다.
산 정상에는 ‘배 바위’라는 이름의 바위도 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배를 대었던 곳이라고 전한다.
어머니는 그런 전설이 깃든 곳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도시로 나와서
지금까지 살아오셨다.
대홍수 이후의 고달픈 세상을
살아오신 것이다.

<대홍수 이후>라는 제목으로
어머니 삶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특별한 사건을 담을 것도 아니고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무엇을 다루지도 않겠지만,
전설과 닿은 세계를 떠난 한 소녀가
여든이 되기까지 도시에서 살아온
고달픈 인생을 드러내다 보면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큐라고 하기도 그렇고
에세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아무튼 시작해보기로 하자.
영화를 만들만한 여건도
못 되는 것 같지만 아무튼...

*

계속 다듬고 있는 긴 소설.
이제 완고를 향해 달려가는 걸까?
조금 더 수정 보완하고
전체적으로 한 번 손을 보면
대충 읽을 만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2천 매가 넘다 보니
다시 한 번 훑어보기도,
집중해서 다듬기도 만만치 않다.
어쨌거나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다.

의외로 힘든 작업이었는지
피로가 제법 쌓였다.
몸이 아팠던 재작년 초,
마음 속에 솟았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날이다.'

별로 달라진 것도 없고
당분간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태어나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중요하다.

*

비가 조금 내렸고
초록이 짙어졌다.

걸어가자.





















2023/04/06 14:00 2023/04/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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