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되었던 때

from 이야기 2003/01/20 00:00


*

어제, 용두산 공원엘 갔습니다.
부모와 함께 나온 아이들도 많았고
따뜻한 날씨를 의지해
양지에서 소일하시는
노인 분들도 많이 나와 계셨지요.

날은 좋았고
용두산 공원의 비둘기들을
정신 없이 날아다녔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동남아 노동자들도 있었지요.
아마도 공원 아래의 중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 어리다고 해야할 남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도 끼리끼리 모여서 커피를 사 마시기도하고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무리 중에서 홀로 떨어저
꼭대기 광장의 끝에 서서
아이들이 비둘기를 희롱하며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고향 땅을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었고
아이들을 보면서 그 고향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어린 나이에 나그네가 되어
먼먼 타향의 한 귀퉁이에 서서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을 바라보는 그 모습.

그 속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떠나지도 못하는 경계에 서있는 어린 나그네의 표정은
무표정이어서 오히려 슬퍼보였습니다.


*

그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서울에서 십 수년간 나그네였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가 나그네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

많은 사람들은 태어난 곳에서 떠나
낯선 곳으로 가게 됩니다.
더러는 그곳에서 성공하여 뿌리 내리기도 하지만,
늘 마음 속에 품은 고향은 있으면서도
자기가 나그네였다는 사실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그곳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기가
나그네로서 받았던 피해와 상처를 잊어버리려는
방어기제인지도 모릅니다.

냉대와 가혹한 대접.
그것을 뚫고 나는 성공하였다는
자만이 가리는 나그네로서의 과거.
혹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자아를 잊어버리기 위해
새로운 나그네에게 돌려지는 칼날.

*

내가 시어머니가 되면 이러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는 며느리일 수록 오히려
가혹한 시집살이를 시키게 되는 것이
세상 사의 흔한 흐름인 것 같습니다.

자기가 서러웠고 힘들었다고
자기가 받은 것을 그대로 넘겨주는 데에는
그 사람만을 탓할 수 없는 환경이 있겠지만,
자기가 받은 상처로 인하여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인간 근본의 연약함 때문일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연약함
상처 입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지 못하는 두려움...

핍박받은 상처가 아직도 생생한 민족이기에,
지금 우리의 나그네에게 가혹하게 대합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수 많은 악행 속에는
그 악행을 가하는 사람들의
상처가 도사리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가지로 자신의 가혹함을 변명합니다.
저들은 게으르다.
저들은 더럽다.
저들은 거지와 같다.
저들은 싫다.

그러나 그 말들 뒤에는
나도 당했다,라는
상처가 살아있습니다.

*

우리 모두는 나그네 입니다.
행정구역상의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늘 새로운 세상을 여는 시간 속에서
언제나 낯선 이방을 헤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제의 고향이 오늘의 고향이 아니고
내가 떠나온 거리가 지금까지 그대로의 거리일 수 없습니다.

우리 근본의 나그네 됨,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나그네였음을 잊지 않고
나그네를 환대하고 받아들여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천사는 때로, 남루한 의상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2003.1.20






massachusetts / bee gees

2003/01/20 00:00 200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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