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얼굴 2

from 이야기 2003/01/13 00:00


그는 아침에 장막을 나서며
구리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땅과 우물을 둘러싼 협상이거나 전쟁이 있으면
거울 속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거뭇한 구렛나룻 그리고 두터운 눈썹,검은 피부...
역시 그는 남자 중의 남자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노쇠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평소엔 몰랐는데
눈 아래에 살이 움푹 꺼진 것이 보였다.
새벽부터 흐린 날씨 탓이었을까.
 
장막을 나오자,
수백의 수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동생도 일가를 이루었으니
그만한 군사가 있어야 이길 것 같았다.
더구나 동생은 잔꾀와 술수에 능하고
집요한 놈 아니었던가.

강 바람이 그의 머리털을 날렸다.
그는 헝크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이십년 전을 회상했다.

그날, 눈 먼 아버지를 속여
형의 가장 소중한 것을 훔쳐 달아났던 동생.
지난 20년간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그 순간이 떠올랐고
그 고통을 겪는 것이
동생에게 축복을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동생이 외삼촌에게 속아
잘못된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속으로 거봐라, 이놈...라는 기분이 되었다.
무수한 고생의 소식이 들려왔을 때
때론 동생의 처지에 연민이 가기도 했지만
동생은 늘상 동생답게
지혜롭고 영민하게 위기를 넘기고
이제는 자기의 힘에 맞먹을 만큼
집안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는 장막 속에 앉아서 밤을 보냈다.
동생이 자신의 무리를 둘로 나누었다던가,
혼자만 남아있다던가 하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그 어릴 때 천지한 얼굴로 자신을 속였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던 그가 깊은 밤 중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
설핏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아니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너무도 생생해서 어린 날의 동생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았다.
흐린 불이 비추는 장막 안은
푸른 풀이 돋아난 초원으로 바뀌었다.
이미 늙어버린 그가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동생은 그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형 배고프지? 이것 먹어...
꿈속에서 나이든 그는 멈칫했다.
그러자 동생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또 뭔가를 뺏을 것 같아서 그래?
아니야 그냥 먹어...
동생이 내민 것은 이십년 전의 그 팥죽이었다.

늙은 그는 수십년 동안 되찾기 위해
싸워왔던 자신의 그 모든 것들,
장막과 양떼와 수하들 그리고 부인들
그 모두가 부질 없이 느껴졌다.
그는 이십년 전의 팥죽그릇을 들고
꿈 속에서 울고 또 울었다.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고
자신이 이룬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 시절의 허기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었다.

눈을 뜨니 그의 눈 아래에 눈물 자욱이 있었고
마지막 첩보가 들어왔다.
동생이 홀로남은 마른 강의 저편이
더욱 짙은 어둠으로 휩싸였다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서른의 병사로 삼백의 병사를 이긴 적도 있었고,
혼자 침입자의 장막으로 들어가
그 수하 열을 쳐죽인 적이 있는 그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니...
이런 전투는 처음이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그는 중얼 거리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미 희끗해지기 시작한 귀밑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눈 아래 움푹해진 부분을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거기에 눈물의 흔적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마른 강 가에서 이십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상하게 피로했다.
저 어둠 때문이야,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점점 이 기다림이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인지
그리운 동생, 어려서 헤어져 더 이상
피붙이 없이 살아온 그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그리움에 값하는 기다림인지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더딘 날도 동이 틀 수 밖에 없는 법.
어둠은 점차로 빛을 받아
광야의 뿌연빛으로 바뀌었다.

그는 피로한 눈을 부릎떴다.

저기 저 멀리 조그만 그림자가 하나
다가오고 있었다.
동생일까?
그런데 동생이 혼자 올리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걸음걸이가 이상하였다.
다리를 다친 무력한 짐승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다리를 다친 짐승을 결코 잡지 않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 그림자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그것은 노인의 얼굴이었다.
누구일까?

점점 가까워 오는 그림자.
아, 그것은 그의 모습이었다.
덩치는 작았지만
이땅의 것들을 이루고 유지하기 위해
노곤한 삶을 살아온 자신의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그는 그의 눈을 의심했다.
아니야, 먼지와 햇살 때문일거야...

조금더 가까워 오자
그 절룩거리는 실루엣 속으로
세부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그것은 동생의 얼굴이었다.
동생은 팔을 앞으로 하고
한쪽 다리를 끌며 그에에 다가오고 있었다.
자기만큼 늙어버린
자기만큼 피폐해져버린...

동생은 혼자였다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동생과 마주섰다.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그의 얼굴이 동생의 얼굴 속에 있었다.
둘은 껴안았고
서로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그렇게 운다음
동생이 말했다.
"오늘 형님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말 없이 다시
동생을 껴안았다.







happy meeting in glory / ry cooder

2003/01/13 00:00 2003/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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