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광시곡

from 이야기 2003/01/09 00:00

*

사뭇 떨리는 손으로,
카드릿지의 바늘을 엘피에 얹는다.
이내 비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후의 코러스.
"Is this real life? Is this just a fantasay?"

금지곡이었던보헤미안 랩소디를
불법 복제된 빽판으로 듣는 것은
어떤 비의(秘儀)와도 같았다.

만연한 금제에 짓눌린 십대였다.
가방을 까발리는 소지품 검사와
머리 뚜겅을 열어보이라는 식의 감찰.
그런 시절의 억압이 금지된 광시곡의
위의를 더해주었던 것 같다.

*

시간이 흘러 그 광시곡이 해금이 되고
CD를 구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들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무언가가 모자랐다.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비내리는 소리였다.
코러스가 들리기 직전까지
숨죽인 순간에 들리던 빽판 특유의 잡음.
그것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세월은 변했고
아이들은 그 동안 수많은 음악을 들어
처음의 그 충격에는 둔할 수 밖에 없었지만,
분명히 빠진 것은 그 빗소리였다.
비내리는 광시곡이
진정한 광시곡이었던 것이다.

비가 내릴 수 밖에 없던 광시곡.

*

물좀 달라고, 외친까닭에
입을 틀어막힌 시절이 있었다..
한 여자가 자꾸만 보고싶다고 노래한다고 해서
모든 이의 귀를 틀어막는 때가 있었다.
조용조용 저 거친 광야에 가겠다고 고백하는데,
행여 누군가 따라 갈까봐
그 소리의 출처와 메아리까지
단속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노래하던 그 청년들은 사라지고
전설 속에서 늙어버린 가수들이 된 후에
합법적으로 그 노래들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듣고자 했던 노래가 아니었다.
그 가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염은 커졌으나
그 노래가 주는 울림은 볼륨이 커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줄어들었다.

*

진정한 노래는 시절을 넘어서지만
븐명한 것은 그 시절의 노래라는 점이다.
그 시절에 유통되던 방식이 아니고서는
그만큼 아름답기 힘든 것이다.

억압과 금제의 시절이 좋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시대의 가슴을 울릴 법한 노래가
건강하게 열린 세상의 끝내 치솟지 못하고
하늘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잔향을
노래의 본령으로 알고 살아온
이 시대의 청취자들,
이제는 커버려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우리들은 불행했는가?

과연 그렇지가 않다.

국제시장의 골목을 돌아
먹통레코드에서 빽판을 사던 경험과
그것을 숨겨듣던 날들,
마리화나가 아닌 담배를 숨어피며 듣던 퀸과 헤비메틀.
새벽에 깨어 김민기를 듣던 날들,
리어카에서 간간이 숨어있는 한대수를 찾아내어 듣던 자취방.
노래는 그러한 삶 모두를 끌어 안는다.
노래는 단지 노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미세한 잔향까지
포함하고 결국은 다른 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했던 것이다.
떨림 숨죽임 눈물 짓눌림이 있었지만
노래는 결국 그 너머의 세상을
경험케 하지 않았던가?

*

노래가 낫긴 나아도
하늘까지 갔다고 돌아온다고 했던
노 시인의 글은 틀린 것이 아닐까?.
우선은, 노래가 화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찌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더 그러한 것은
노래가 있는 한 우리는 하늘로 올라갈 이유가
없다는 데 있는 것이다.
노래는 오히려 하늘을 데리고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시인이 시로써 데리고 왔던 것은
과연 그 하늘 아니었던가?

그 비내리는 광시곡 안에
천국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






bohemian rhapsody / queen
 

2003/01/09 00:00 2003/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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