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가득한 소리

from 이야기 2002/12/31 00:00


새해가 열리는 자정이 되면,
보신각 종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서울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지만
저의 고향 부산은 다릅니다.

새해 0시가 되면 항구의 모든 배들은
일제히 고동 소리를 울립니다.
교회의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도
그 소리가 잦아들어야 시작됩니다.

은하수 별빛같은 항구의 불빛을 보며
그 울림을 듣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경험입니다.
모든 외로운 별들이 소리를 내는 것 같은,
우주에 가득한 음향을 듣는 것 같은,...

고동을 울리는 이는
한 해의 끝과 처음에 땅도 못 밟고
배 위에 떠 있는 외로운 선원이겠지요.
그 고동을 울리는 마음이야
이 소리가 사랑하는 이에에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고,
항구는 잠잠히 그 소리를 듣습니다.

부산한 마음의 모든 것들도
숨죽이는 그 1분간...



1분만이라도 모두가
그 외로운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세상은 진정 달라지겠지요.

사랑으로 물결치는 가슴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던 어린 날이 있었습니다.
그 세상에서 거의 이십년 살아오면서
그 애초의 생각들은 망가지고 훼손되고
자멸적인 자조를 겪기도 했지만
지금 희미하게나마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
진리는 시간에 굴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 해가 가고 옴이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도대체 무어냐,라는
쓰라린 마음이 되어 항구의 소리를 들었던 날들...

그러나 오히려 그 쓰라림으로 인하여
다시 항구의 고동소리는 살아납니다.

아픔을 아픔으로 안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
아픈 아이들끼리 안는 것이 사랑.
용서하고 용서 받는 순간,
포옹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포옹 속에서
우주는 새롭게 태어납니다.
영원한 우주의 역사는
그 순간 속에 있습니다.
우주의 영원한 역사는
 나와 너의 나누어지지 않는 그 순간에
모든 빛을 발합니다.

이 글과 그림에는
음악을 붙일 수가 없군요.
보시는 모든 분들의 마음 속에 울리는
상상의 음악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요?

그것이 범종의 소리이건,
성당의 성가이건
뱃고동이건
전화벨이건
그 무엇이건...

happy new year



2002/12/31 00:00 200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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