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이나 어른이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립니다.
 무슨 까닭인지...

 하여간, 그저 그렇게, 보이던 풍경들이
 하얀 세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는 합니다.

 하얀 색에 관한 기억이 몇 있습니다.
 이런 크리스마스 시즌의 이야기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흰색에 관한 기억 하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이야 김밥이라는 것이 체인점까지 생겨서
 패스트푸드나 정크푸드의 수준으로 하락을 했지만,
 그때 김밥이란 것은
 소풍 갈 때나 먹을 수 있는 특식이었지요.
 헌데 소풍을 가더라도 김밥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지,
 아니면 5학년 때의 소풍이었는지,
 모두들  둘러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 시간인데
 저기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도시락을 여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김밥을 싸오지 못한 아이였습니다.
 도시락도 흔히들 김밥을 싸는 일회용이 아닌
 매일 도시락을 싸오던 양철로 만든
 노란 금속 도시락이었지요.
 아이가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는데,
 그 속에 하얀 쌀밥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도시락에 가득찬 하얀 쌀알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김밥을 싸는 데 몇 푼이나 든다고...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때의 가난한 동네에서는
 김을 따로 사고, 계란을 부치고 당근을 또 따로 사고
 그래서 김밥을 싸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의 어머니는 소풍이니만큼
 보리쌀이 더 많던 평소의 도시락 대신
 온전한 쌀밥을 지어서 만들어 주신 것이었지요.

 한 구석에서 남들 볼까봐 몰래 열어
 숟가락을 밥을 먹던 아이의 얼굴이
 햇빛에 비치던 하얀 쌀알과 더불어
 아직도 떠 오릅니다.

*흰색에 관한 기억 둘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담임 선생님은 누누히 아이들에게
  "평범"이란 걸 강조하셨지요.
  자기 삶의 신조라면서.

  그런데 이 나이를 먹은 지금 생각해도
  그 양반의 평범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여간, 그 '평범' 때문에
  아이들은 수 많은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우선은 손톱검사였습니다.
  길이가 얼마나 되어야 평범의 길이인지를 몰라도
  조금 길다 싶으면, 그것도 손톱밑에 때가 끼어있으면
  여지없이 손바닥을 맞거나 벌을 서곤 했지요.

  가난한 아이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아빠가 없는 애들,
  선원으로 멀리 나가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막일을 나가는 엄마를 둔 아이들도 많았지요.

  선생님은 자기의 평범을
  모든 아이들에게 강요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깨끗하고 단정해진다면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일터이지만
  그렇게 깨끗하고 단정한 것 이전의
  것들이 충족되지 않는
  아이들이 많은 동네였지요.

  손톱 검사라던가 머리검사 등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떠 올리면서 경악을 하게 되는 것은
  속옷 검사입니다.
  검사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자기의 책상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허리띠를 풀고 단추를 끌르고
  속옷의 색을 검사받아야했습니다.
  선생님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아이들을 벌주곤 하던 몽둥이로
  아이들의 겉옷을 뒤지면서
  속옷의 위생정도를 검사하셨지요.

  사실, 많은 아이들은
  일년에 목욕을 한 두번 할까,말까했었지요.
  얼굴엔 버짐이 피어있었고
  손톱밑엔 때가 끼어있는 것이
  지극히 정상인 동네 였습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속옷이
  깨끗할 리가 없지요.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공부는 반에서 거의 매달 꼴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늘상 무표정에 갇혀있는 얼굴.
  속옷 검사를 하는 어느 날,
  그 아이의 속옷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놀랍게도 하얀,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는 하얀 팬티였습니다.
  푸른 빛까지 도는 하얀 색.

  더러운 속옷이 남들 앞에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운 아이는 엄마를 졸랐을 것이고
  엄마는 없는 돈을 털어서
  아이의 속옷을 사왔겠지요.

  초가 집도 고치고 마을길도 넓히고...하는 것이
  근대화라고 믿던 시대였으니
  그 선생님을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참 마음 아픈 기억들입니다.
  평범이란 것이 눈으로 보이는
  자기식의 표준적인 수준으로 만들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설마 하시지는 않았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아이들이 좀 더 깨끗하고
  청결한 상태에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만,
  그 동네의 평범이 무엇이었는지
  인정할 줄 모르던 선생님은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르니에


 대학 때, <까뮈를 추억함>이란
 그르니에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알제리의 빈민가에 살던 까뮈가 오래 결석을 합니다.
 선생님이었던 그르니에는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때 선생님은, 까뮈의 눈빛을 읽습니다.
 그 속에 있는 경계와 옅은 적의도 읽습니다.
 선생님을 맞이하기는 하지만,
 악수할 손을 뒤로하고 있는 듯한 몸짓과
 자기와 대립하고 있는
 이 사회의 대표자로서 선생을 맞이하는 눈빛.
 그르니에는 그것을 읽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아이를 받아들입니다.

 참 선생이 취해야 할 바는
 자기의 자리로 아이를 끌어당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겠지요.


* 다시 화이트 크리스마스


 내게 슬픈 흰색을 보여주었던
 아이들은 지금 마흔을 앞두고 있겠지요?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지...
 크리스마스가 되니
 어린 시절의 아이들이 더욱 생각 납니다.

 되려다만 화이트 크리스마스 때문에
 흰색에 관한 기억을 이야기하게 되었지만,
 무상으로 세상이 온전히 달라보이는  풍경은
 정말 축복으로 느껴지겠지요.
 그것도 성탄절에  
 세상이 온통 하얗게 빛난다면...
 제게 흰색은 슬픈 기억들과 이어져 있지만,
 정말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된다면
 그날은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흰색에 관한 내 기억들도 덮어버리고
 축복으로 바뀌겠지요.

 2002.12.25





 winter wonderland / ella fitzgerald

2002/12/25 00:00 2002/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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