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 길의 할렐루야

from 이야기 2002/12/17 00:00


*

영도(影島)의 비탈길.
그곳에서 왜 영화를 찍지 않는지
나는 정말로 궁금합니다.

거기서 바라본 항구와
골목 틈의 풍경에는 ,
혹할만한 그림들이 많은데 말입니다.
부산항을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
그리고 가파르고 삐뚤거리는 비탈길.
새로지어대긴 했지만
여전히 판자스러운 모양새를 벗어나지 못한 집들이
삐죽거리며 붙어 있는 곳.

딱 한 번,
영화는 아니지만
TV문학관에 영도에서 바라본
부산항의 모습이 찍힌 적 있습니다.
(최근 만들어지는 독립영화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소설,
'사람의 아들'을 TV문학관으로 만든 것이었지요.
그 첫 장면에 걸려있던 뾰족탑.
그것이 제 고향 교회의 첨탑입니다.



*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교회에 성가대 지휘자가 새로 오셨지요.

그분은 종교음악을 전공하신 분이었고
브란덴부르크합주곡을 들으면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 지휘자와 교회 성가대는 거리가 멀었지요.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성가대원들은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없었고
어쩌면 4성부를 나누어 부른다는 것 자체가 용한,
그런 성가대였습니다.
그 전 까지 부활절에 칸타타를 발표하기도 하고,
또 타고난 목소리의 몇몇이
빼어난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지만...


*

그런데, 그 해 성탄을 앞두고
성가대가 헨델의 할렐루야를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열심히 연습에 다니셨지요.

당시, 교회에서건 학교에서건
의자 맨 뒷 줄의 악동같았던 나는  
흥...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생선 비린내 나는 헨델이라니...

성가대원들은. 교회의 직함을 빼고 말하자면
미장원 아줌마,
보험 아줌마,
철공소 아저씨,
경리 여직원,
어쩌다 대졸 회사원,
조선소 노동자...
이런 식의 구성이었지요.


*

드디어 할렐루야를 발표하던 날.
마음 속의 팔짱을 끼고 뒷줄에 앉아있었습니다..


지휘자가 쓸데 없는 만용을 부렸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 놈의 비틀어진 비탈길에 무슨 할렐루야란 말인가,라는
비아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국왕 아무개가 듣다가 벌떡 일어난 이후로
이상하게 의례화된 기립의 맥락없는 답습도 싫었구요.

그런데,
나는 결국 일어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터져나는 할렐루야 소리.
미장원에서 가위질을 하다 온 알토의 할렐루야,
철공소에서 쇠망치를 두드리다 온 베이스의 할렐루야,
수판을 굴리다 온 소프라노의 할렐루야,
낡은 배의 녹을 벗기다 온 테너의 할렐루야,

나의 온 몸에는 소름이 돋았고,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철저하게 비탈길다웠고
철저하게 아름다웠고
철저하게 성스러웠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랴...하던
내 속의 이죽거림을 뚫고
그 할렐루야 소리는
비탈길을 따라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

지금껏 많은 할렐루야를 들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할렐루야는
결코 다시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성탄절이 가까워 오니
그때, 영도의 비탈길에서 울리던
할렐루야 소리가 그리워 집니다.

2002.12.11



                                          

christmas wish / tuck & patti

2002/12/17 00:00 2002/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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