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만에 전 직장의 선배를 만났다.
미대를 나온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림을 그리다 가장 행복했을 때가
반사광이란 것을 발견했을 때라고 말했다.

위에서 빛이 비치고 있을 때,
빛이 닿지 않는 꺾여진 부분을 보통은
그냥 점점 어두워지게 칠하고 마는데,
세심하게 관찰을 하면
그 어두운 부분의 끝은 오히려
밝에 빛난다고.

그 이유는 빛을 받는 아래면이 빛을 반사하기 때문.
사실 아주 단순한 이치이지만
일반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이 반사광이라고 한다.

하여간, 그 선배
스스로 반사광을 발견하고
하늘을 날듯했다고 한다.


                    (함께 갔던 커피숍의 벽면에 부조된
                    원두커피 사진. 아랫부분을 보면
                    빛을 받지 않은 아랫면의 끝쪽이
                    오히려 밝음을 볼 수 있다)


*

빛에 대해 무감했던 내가 빛에 예민해진 것은
아마도 캠코더와 관련이 있겠지만,
스페인에 갔을 때의 경험이 기여한 바가 크다.
포토 스탁북들을 통해서 이미지를 많이 고르고 보아오던
이전까지의 나는,
남 유럽의 사진들이 대체로 필터를 써서 찍혔거나
색 보정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대리석 건물은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사진 말이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서는
아...하고 말았다.
나의 눈으로도, 나의 싸구려 캠코더로도
하늘은 파랑, 대리석은 붉은 빛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분명 태양이 비치는 각도에 의해서
그 빛이 발하는 파장이 달라지고
그러한, 한국에서는 못보던 빛이 생겨나는 것일 터.
섬세한 눈으로 본다면,빛은 무궁한 다양성으로
눈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혹자가 영화를 빛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조금은 깨달을 수가 있었고
나는 빛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긴, 서울과 부산의 햇볕에도 차이가 있다.
서울의 겨울 오후의 햇빛은
해운대의 겨울 오후 햇빛을 따라올 수가 없다.
오후 네시나 다섯시 무렵 해변에 있으면
기울어가는 겨울 태양이
모래사장 전체를 은은히 붉게 물들이는데
그 빛은 참으로 따뜻하고
안온하다.


*

다시 반사광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 반사광을 제대로 그려내지 않으면
물체의 입체감이 이상해진다고 한다.
위에서 제대로 비친 주광도 아니고
아래의 표면에 비춰진 빛.
그것의 역할.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무언가에 의존하고 연약한 존재라 하더라도
충분히 이 세상에서 의미있고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달은 많은 별들과 달리
태양의 반사광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참으로 많은 신화와 이야기와
인간의 소원들을 짊어지고
천공에 떠 있지 않은가.


*

사실 어떤 인간이 스스로 빛나는 존재일까?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라는 말 처럼..
나의 말, 나의 생각, 나의 글, 나의 창조라고 믿는 부분이
기실은 태초의 빛이거나
그 빛을 옮겨준 많은 분들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일 뿐.





2002.12.13

2002/12/13 00:00 2002/12/13 00:00
Tag // , ,

댓글을 달아 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