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인터넷에는
영상 동호회 사이트가 인기였다.
많은 이들이 캠코더로
촬영하고 편집한 것을 올리고
반응을 주고 받았다.
거기에 영상을 많이 올렸다.
그러다 홈페이지를 열자
영상 동호회에 드나들던 이들이
많이 찾아주었다.
성탄절이나 새해가 되면
카드를 그려서
인사했다.

*


2003년 크리스마스 카드
처음으로 홈페이지에
그려서 올린 카드.
두 팔을 들어서
별을 맞이하는 사람을 그렸는데
익숙치 않는 포토샵에
데생까지 서툴러서
이상한 그림이 되고 말았다.



2004년 성탄절
회사를 그만두면서
많은 이들과 멀어졌다.
빈 들에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수입도 더 줄었다.  
그러면서 가진 것도 없고
고립되어 있는 이들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되었다.
성탄의 소식을
처음 들은 이들은
빈 들에서 양을 치던,
가난하고 존중받지 못하던
목동들이었다.



2006년 별이 성큼성큼
커다란 별이
큰 걸음으로 다가오는 상상을 했다.
작은 사람들을 찾아오는
크고 밝은 별의
활달한 걸음걸이.



2008년 조용한 성탄절
초등학교 6학년 때
성탄절 카드를 그려서
학급의 친구들에게 보냈다.
종이에 검은 색을 칠하고
그 위에 작은 집과 전나무들,
그리고 하늘의 별을 그렸다.
나무와 지붕, 땅에는
흰색을 더해 눈을 표현했다.
별이 뜬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나도 예쁜 카드를 받았다.
그때 카드를
주고받았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2004년 새해 인사
길을 많이 걷게 되면서
가로수를 자주 보게 되었다.
나무란 존재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런 그림도 그렸다.
나무이면서 동시에 이파리.
사실, 나뭇잎 하나가
나무 한 그루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2018년에는
내 주변의 나무들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게 되었다.

오른 쪽 아래에 있는
'finitum capax infiniti'는
'유한한 것은
무한한 것을 포함한다'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2005 날아보자!
닭의 해를 위한 연하장.
날지 못하는 이들의
비상을 기원하면서 그려본 것.
그러나 늘 발버둥을 쳐도
여태 날아오르지 못했다는...



2007년 돼지의 해
언제나 새해가 되면
좋은 일이 많기를 기대하지만
쉽지 않은 해들이
계속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렇게 지나온 것이
참으로 좋았구나,
싶기도 하다.



2010년 호랑이의 해
다른 데 쓰기 위해 그린 호랑이 그림.
호랑이의 해가 되면서 재활용.
호랑이 담배 먹는,
전설 같은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2011 토끼의 해
홈페이지를
블로그로 이전하고 나서 만든 연하장.
시간이 흐르면서
영상 동호회도 시들해지고
또 내 블로그에도
찾는 이들이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카드나 연하장을
잘 그리지 않게 되었다.
이후로 더 그리긴 했지만
비슷한 것이었다.



*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년 전에 만들었던 홈페이지를
아직 유지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뭘까, 라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올리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도 아니다.
오래 해왔기에 버릴 수 없는
어떤 집착 같은 것일까?
없애기도 힘들어서
그저 유지하는 것일 뿐인가?

아무튼,
큰 회사를 그만 두고
스무 해가 지났구나
뭘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는 시간.
하지만 계속 걸어온 것 만은 사실이다.
"가자, 어디에 이르지 몰라도!"
이런 마음으로
막막한 날들을 지나왔다.

또 한 번의 분기점에 이른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거리에 나섰던
처음의 그 마음일 것이다.

걸어가자.


 





2022/11/29 15:15 2022/11/2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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